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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습식공정의 기술적 특성과 장단점 — “용해에서 회수까지, 화학으로 푸는 금속의 언어”
폐배터리 재활용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습식공정(hydrometallurgy)’이다. 이 방식은 이름 그대로 ‘액체’를 이용해 금속을 녹여 분리하는 공정이다. 단순히 ‘녹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화학 반응과 공정 제어 기술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대부분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음극에 흑연, 양극에 리튬-니켈-코발트-망간 산화물(NCM)이 사용되므로, 습식공정은 이 복합금속 산화물을 안전하게 용해하고 금속 이온을 개별적으로 회수하는 데 중점을 둔다.
습식공정은 보통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전처리 및 분쇄, 두 번째는 침출(leaching), 세 번째는 분리 및 정제다. 전처리 단계에서 배터리는 방전 및 파쇄를 거쳐 블랙매스(black mass)라는 분말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 블랙매스는 금속 산화물과 탄소류가 혼합된 고체로, 침출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재료다.
침출 단계에서는 황산(H₂SO₄), 질산(HNO₃), 염산(HCl) 등의 강산을 사용하여 금속을 액상으로 전환한다. 여기에 환원제로 과산화수소(H₂O₂)를 첨가하면 삼가 양극 재료에 포함된 금속 산화물이 금속 이온으로 환원되어 산속에 녹아든다. 예를 들어 CoO₂ + H₂SO₄ + H₂O₂ → CoSO₄ + H₂O 반응처럼, 코발트 산화물이 코발트 황산염으로 용해되는 식이다. 이때 pH, 온도, 농도 비율, 시간 등에 따라 회수율이 달라지는데, 잘 설계된 조건에서는 코발트 기준으로 95% 이상의 회수율을 달성할 수 있다.
이후 용액에 포함된 금속 이온은 침전, 용매추출(solvent extraction), 이온교환 등으로 분리된다. 예컨대 용매추출 과정에서는 특정 금속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유기 용매를 사용하여 니켈과 코발트를 분리하고, 리튬은 탄산리튬(Li₂CO₃)으로 침전시켜 회수한다. 이러한 단계들을 조합하면 고순도 리튬, 코발트, 니켈을 각각 독립된 형태로 회수할 수 있다.
습식공정의 최대 장점은 바로 이 ‘선택적 회수’ 기능에 있다. 건식공정이 금속을 한 덩어리로 녹여 분리하는 반면, 습식공정은 화학적 성질 차이를 이용해 순도 높은 금속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리튬의 경우, 건식공정에서는 대부분 슬래그에 흡착되어 회수율이 떨어지지만, 습식공정은 별도의 침전 공정을 통해 고효율로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 이면에는 단점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폐수 처리’와 ‘화학약품 사용’이다. 수많은 산성 용액이 사용되며, 이에 따라 pH가 낮고 중금속이 포함된 폐수가 다량 발생한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이 폐수를 정화하지 않고 방류할 경우 수질 오염은 물론 법정 제재도 받을 수 있다. 또한 화학약품은 고가이며, 일부는 위험물로 분류되므로 운송·보관·취급에도 높은 관리 비용이 필요하다.
더불어 습식공정은 공정 자체가 다단계이며 복잡하다. 금속마다 분리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을 설계할 때 매우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리튬은 침전, 코발트는 추출, 니켈은 이온교환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분리해야 하며, 이는 공정 자동화와 제어에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복잡성은 초기 투자 비용과 운영비용을 증가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습식공정은 기술적 진보를 통해 지속해서 개선되고 있다. 최근에는 생물 침출(bio leaching) 기술이 일부 연구에서 시도되고 있으며, 박테리아를 이용해 금속을 용해하는 친환경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폐수 무방류 시스템(ZLD), 산 회수 기술, 폐산 재활용 공정 등과 결합하며, 지속 가능성을 강화한 습식공정이 등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습식공정은 리튬과 같은 경금속 회수에 탁월한 효율을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고순도 + 고효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방식이다. 다만 환경 규제와 경제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신기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상용화에는 제한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와 미래의 재활용 산업은 ‘습식공정 단일체계’가 아니라, 건식 또는 기타 공정과의 하이브리드 전략을 모색하는 쪽으로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
2. 건식공정의 기술적 특성과 장단점 — “고온에서 녹여내는 금속의 논리, 효율과 한계 사이”
건식공정(pyrometallurgy)은 폐배터리를 고온의 열에너지로 처리하여 금속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이 공정은 기본적으로 1200~1600℃ 수준의 고온을 이용해 블랙매스에 포함된 금속 성분을 녹여 분리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전기로 또는 반응로를 이용해 금속 산화물을 금속 또는 금속 합금 형태로 용융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코발트, 니켈, 구리 등은 밀도 차이를 이용해 슬래그와 금속 덩어리로 분리되며, 슬래그에는 리튬과 같은 경금속이 흡착되어 일부 손실되기도 한다.
건식공정의 가장 큰 장점은 대규모 배터리 처리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전처리 없이 모듈이나 셀 단위의 배터리를 직접 투입할 수 있어 생산성과 공정 단순성이 높다. 파쇄-분쇄-화학 침출 등 복잡한 습식 단계를 생략하고 열처리 하나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건비 및 장비 유지 비용이 줄어든다. 또한 침출액이나 폐수가 발생하지 않아 수질오염 우려도 적다.
하지만 건식공정에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리튬 회수율의 문제다. 고온에서 리튬은 대부분 슬래그 내에 남게 되며, 이 슬래그는 재처리 없이는 리튬을 다시 회수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리튬의 회수율은 20~30% 수준에 머물거나, 아예 버려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문제는 향후 EV용 배터리의 주요 회수 목표가 ‘리튬’이 될수록 건식공정 단독의 한계를 의미하게 된다.
또한 건식공정은 에너지 집약적이다. 고온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며, 탄소 배출량이 많아 친환경성이 떨어진다. 특히 온실가스 규제가 강화되는 현시점에서는 EU나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고효율 전기로 설계, 열 회수 시스템,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사용 등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건식공정은 특정 조건에서 매우 유효한 방식이다. 특히 니켈·코발트 함량이 높고 리튬보다 고부가가치 금속 회수가 우선시되는 산업에서는 여전히 선호된다. 최근에는 건식공정을 전처리 용도로 사용하고, 이후 슬래그에서 습식공정으로 리튬을 회수하는 하이브리드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융합은 건식공정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주목받는다.
3. 환경적 영향 및 지속 가능성 비교 — “공정의 탄소 발자국, 재활용은 정말 친환경적인가?”
습식공정과 건식공정은 모두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므로 친환경적이다’는 공통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환경 부하의 방향성과 대응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습식공정은 다량의 화학약품을 사용함으로써 ‘수질오염’과 ‘산성폐수 처리’가 핵심 환경 쟁점이 되고, 건식공정은 고온 열처리에 의한 ‘에너지 사용량’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문제의 중심이 된다. 이는 공정 자체의 기술적 선택뿐만 아니라, 공장을 어디에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어떤 규제를 적용받을 것인지에 따라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습식공정은 H₂SO₄나 HCl과 같은 강산을 대량 사용하며, 금속 침출 후 남는 폐액은 중금속과 산도가 높은 상태로 배출된다.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수계 오염은 물론 토양 산성화와 생태계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여 ZLD(Zero Liquid Discharge, 폐수 무방류 시스템) 기술을 도입하거나, 사용한 산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폐산 재활용 기술이 실험되고 있다. 이러한 보완 기술은 에너지 소모를 동반하긴 하지만, 습식공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반면 건식공정은 에너지 사용이 집중된 구조다. 전기로를 통해 수백 킬로그램 단위의 배터리를 고온 용융 처리할 경우, 사용 전력이 급증하며 이에 따른 탄소 배출도 크다. 실제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조정 제도(CBAM)와 같은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재활용이라 하더라도 생산공정에서 탄소배출이 많으면 역으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건식공정의 확장은 ‘열효율 개선’ 또는 ‘재생에너지 기반 공장 운영’ 등과 결합하여야 비로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더불어 두 공정 모두 ‘현장 맞춤형 기술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물 부족 지역에서는 건식공정이 유리할 수 있고, 전력 비용이 적은 지역에서는 습식공정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기술 그 자체의 친환경성을 따지는 것보다는, 공정 설계와 운영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하느냐가 환경 지속가능성의 핵심이 된다.
결국, 폐배터리 재활용이 진정한 의미의 녹색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활용한다”는 명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부하까지도 설계 단계부터 고려한 '전 주기적 대응'이 필요하다. 친환경 재활용이란 제품이 아니라 공정의 문제이며, 이는 향후 ESG 평가, 탄소세, 환경 인증제도 등과 맞물려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4. 상용화 사례 및 기술 발전 동향 — “특허에서 공장으로, 기술이 산업이 되는 순간”
전 세계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습식공정과 건식공정 기술은 단순한 실험실 단계를 넘어서 대규모 상용화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전기차(EV) 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배터리 수명이 도래한 차량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리튬·코발트·니켈을 중심으로 한 전략 금속 확보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및 국내 기업들은 특허를 넘어, 실제 생산라인에서 어느 공정을 선택하고 어떻게 구현할지를 두고 첨예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상용 사례로는 중국의 GEM, 한국의 성일하이텍, 미국의 Redwood Materials, 캐나다의 Li-Cycle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습식공정을 주력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리튬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공정 고도화를 지속해서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Li-Cycle은 특허 기반의 습식공정을 적용하여 리튬을 포함한 95% 이상의 금속 회수율을 목표로 하며, 블랙매스 분리-용해-분리 공정을 자동화 설비로 구축했다. 반면, Umicore나 Glencore와 같은 대형 자원 기업은 고온 용융 기술 기반의 건식공정을 적극 활용하여 니켈, 코발트 중심의 회수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 발전 측면에서는 기존 습식공정의 취약점이던 폐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산 회수 시스템, 리튬 선별 침전 기술, 이온 선택적 박막 등이 개발되고 있다. 건식공정 역시 CO₂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산소 열처리 기술, 마이크로웨이브 기반 가열 기술, 폐열회수 장치 등으로 기술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두 공정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재활용 라인도 제안되고 있으며, 예를 들어 고온에서 금속을 분리한 후 슬래그에서 습식공정으로 리튬을 다시 회수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특허 트렌드 역시 이러한 기술 진화 방향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의 특허는 단순한 공정 장치에 그치지 않고, 특정 조건에서 리튬 회수율을 최대화하는 화학적 조성비, 슬러리 흐름 제어 방식, 모듈형 공정 설계 등 실제 공장 적용을 전제로 한 기술 설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도요타가 출원한 특허 중 하나는 리튬 회수 단계에서의 pH 제어를 자동화하는 알고리즘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리튬 회수율의 정밀 제어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결과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상용화는 단순히 한 가지 공정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조성, 회수 목표 금속, 지역 인프라, 환경규제 조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맞춤형 공정 설계’로 나아가고 있다. 리튬 회수율이 낮은 건식공정도 슬래그 재처리 기술을 통해 보완되고 있으며, 습식공정의 폐수 처리 문제도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어, 향후에는 두 공정이 경쟁보다는 ‘보완재’로 공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은 더 이상 파일럿 실험실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특허가 곧 설비가 되고, 기술이 곧 매출이 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앞으로는 리튬 회수율 5% 차이가 곧 기업의 연간 수익 수백억 원으로 직결될 수 있으며, 탄소배출 절감 여부가 글로벌 조달 계약의 당락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합하고 운용’할 수 있는 역량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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